
KLASSE W 이미지, 후지필름 홈페이지에서
KLASSE W를 사용한 지 1년 반이 지났다. 이 녀석 사용기를 써봐야겠다는 생각은 한참 되었는데, 귀찮은 셩격 탓에 미루고 미뤄 왔다. 물론 미루는 이유도 그럴싸하게 만들었는데, 우선은 28mm 렌즈 화각에 적응하게 될 때 그리고 KLASSE W의 인터페이스가 자연스러워졌을 때야 비로소 사용기를 쓸 수 있는 거 아니냐는 조건을 만들었던 거다. 그래, 그러면 사용기를 쓰는 지금은 이 두 조건을 만족시켰는가? 그런 듯하면서도 또 그렇지 않은 듯한 게, 아직도 뭔가 2%가 부족하다. 여전히 익히고 배울 게 많이 남아있다는 의미일테다.
KLASSE W를 선택하기까지
FM2를 휴대하는 데 지친 기색이 역력해질 무렵, 똑딱이에 눈이 가기 시작했더랬다. PEN EE-3라는 아담한 똑딱이가 있었지만, 겉멋이 잔뜩 들어버린 자에게 토이 카메라 같은 EE-3는 성에 차지 않았고, 고급 사양의 똑딱이들만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집을 구할 때는 비싼 집을 먼저 보는 게 아니라 했을진대, 고가의 똑딱이를 일단 봐버린 이상 눈을 낮추기는 무척 어려웠다.
수십 일 동안 사진 관련 클럽에서 여러 기종의 똑딱이 사용기를 보고 또 보았다. 관심 자체가 FM2, 그러니까 SLR에 머물러 있던 당시였기에, 새롭게 펼쳐지는 똑딱이들의 세계는 넓고 넓었다. 리코의 GR1v, 니콘의 28Ti, 라이카의 minilux, 미놀타의 TC-1, 콘탁스의 T2, T3까지, 오~ 그 세계는 경이로웠다.
고민의 고민을 거듭한 후 최종 선택은 후지필름의 KLASSE W였다. GR1v가 끝까지 경합을 벌이기도 했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KLASSE W에게 밀리고 말았다. KLASSE W를 선택하기까지의 시간은 꽤 걸렸지만, 결과적으로 마지막 선택의 순간엔 논리라는 놈은 설 자리가 없었다. 자신을 나름 이성적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결정적 순간에는 사유보다 직관을 앞세우는 경향이 있다고 했던가? ‘그 하고많은 똑딱이 중 왜 KLASSE W냐’는 질문에 뭐라 답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KLASSE W, 뭐가 좋은가?
이 녀석은 상당한 샤프니스를 자랑하는 SUPER EBC FUJINON 렌즈를 탑재하고 있다. 여러 사용기를 보면 결과물에 대해 이런저런 찬사가 쏟아지기도 하는데, 하지만 중형 필름이 아닌 35mm 필름으로는 이제 디지털 카메라의 샤프니스에 견줄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기에 이 부분은 패스하겠다.
아니 그럼, ‘KLASSE W가 후지논 렌즈 빼고 뭐 볼 게 있냐’ 해버리시면, ‘그러게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물론 여타의 똑딱이들을 사용해 보지 못했기에 경험에 바탕한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긴 하지만, 사실 후지논 렌즈의 능력을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나중에 괜찮은 스캐너를 구해서 자가 스캔을 해보고 다시 판단해볼 문제이긴 하지만서도.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이 녀석 부족한 점도 찾기는 힘들다. 28mm의 렌즈는 f=2.8로 밝은 편이고, 화각은 75.4°로 어지간하면 눈에 보이는 건 죄다 파인더 안으로 들어온다. 노출 보정 다이얼이 전면에 독립되어 있어 조작이 편리하고, P 모드와 조리개 우선 모드 전환도 자연스럽다. 오토포커스도 제법인데다가, 최단초점거리는 똑딱이로는 경이적인 0.3m이다.
아직 사용해본 적은 없지만 NP모드(ISO800 이상의 고감도 필름을 사용할 때 노출을 자동으로 제어하는 프로그램 모드)도 지원한다. 모든 똑딱이들이 그러하겠지만 SLR과 비교했을 때, 안정적인 셔터스피드가 1/60에서 1/45이나 1/30까지, 그 이상까지도 느려지며, 게다가 한 손으로 들고 찍을 수도 있다. 이건 똑딱이의 무한한 매력이지 않을 수 없다.
하나 더 추가한다면, 클래식한 외양도 KLASSE W를 돋보이게 하는데 한 몫 할 것이다. 8000대 한정 생산이라는 레어로서의 가치도 있을 수 있겠는데, 사실 그런 것에서는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편이다.
반면 굳이 불편한 점을 언급한다면 필름실이 오른쪽에 있다는 것과 후드 분실 우려가 높으며, 파우치가 정들기 전까지는 별로다. 그리고 최악의 단점은 전원을 켰을 때 렌즈가 앞으로 돌출되는데, 이 때 배터리가 떨어지면 튀어나온 렌즈를 넣을 방도가 없다는 데 있다. 사용 중 이렇게 돼버리면, 렌즈 캡이란 게 없기에 개방된 렌즈를 보호할 방법이 없다. 주둥이가 툭 튀어나온 상태로 파우치에 집어 넣어야 하는데, 그게 영 신경 쓰인다.
오랫동안 함께 할 녀석
가지고 있는 카메라 중 유일하게 신품을 구입한 카메라는 이 녀석 뿐이다. 다른 카메라는 중고를 구입했거나 내가 산 게 아니다. 1년 반 동안 나름 터프하게 사용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생활 스크래치도 찾기 힘들 정도로 깨끗한 편이다. 오랫동안 아껴줘야겠다. 네가 물러날 때는 아마도 LX-3가 생겼을 때가 아닐까 싶다. 그때가 언제일지 기약조차 할 수 없지만.
서설이 길었고, 아래는 그간 KLASSE W로 찍은 사진들이다. 대부분 이전에 이곳 블로그에 포스팅 된 사진들이겠지만, 사용기 구색을 맞추기 위해 한 데 모아 보았다. 모든 사진은 주문 스캔 후 무보정 리사이즈다.
KLASSE W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면 후지필름 홈페이지를 참고하시라. 대신 일본어를 모르시는 분은 저처럼 이미지와 숫자만 보시면 되겠다.
― 2009. 7.

잠원 | REALA | 2008. 3.
초점거리 0.3~0.4m로 촬영했다. 앝은 심도도 확인해보시라. 완전 개방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반포 | X-tra400 | 2008. 4.

신림 | TMAX(+2) | 2008. 4.

조용했던 새남터 | REALA | 2008. 5.

분노 속에 새생명이 피어난 노근리 | SUPERIA200 | 2008. 6.

뜨거웠던 세종로 | SUPERIA200 | 2008. 6.

책향 가득한 뿌리서점 | SUPERIA200 | 2008. 7.

신림 | SUPERIA200 | 200. 7.

하릴없이 걸었던 한강 | SUPERIA200 | 2008. 7.

비온 후 달린 강변북로 | ULTRA100 | 2008. 7.

불타는 신림 | ULTRA100 | 2008. 8.

아늑했던 호암산 | ULTRA100 | 2008. 8.

하늘이 캔버스가 됐던 한강 둔치 | RVP50 | 2008. 10.

만추의 서울대 | 160VC | 2008. 11.

야간 산행했던 겨울의 태백산 | 160VC | 2008. 12.

명동성당 | vista200 | 2009. 1.

옅은 아침 안개가 내려앉았던 전주천 | SUPERIA200 | 2009. 2.

경기전 | SUPERIA200 | 2009. 2.

시원한 전망의 식영정 | FUJICOLOR100 | 200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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