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카메라, FM2 by 妙香

FM2를 사용한지 3년이 조금 안 된다. 사진에 관심이 생긴 것도 딱 그 만큼 되어간다는 뜻이 된다. 허나 그간 사진을 보는 안목도, 찍는 안목도 그대로다. 하나의 주제에 집중하지도 않았고 사진 관련 수업을 받은 적도 없다. 전시회를 찾아다닌 적도 거의 없고, 들춰본 사진집도 손가락으로 꼽는다. 그러니 제 자리인 게다. 핑계이겠지만, 소소한 생활을 담아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리라 여겨버리니 그런 게다.

더구나 어설프게 알아버린 사진은 마치 군 내무반에서 어깨 너머 배운 바둑처럼, 정석은 없고 요령과 편법만이 난무한다. 아, 나의 사진 세계여.

             
나의 카메라 FM2

FM2을 선택한 데는 나를 카메라 세계로 인도했던 친구의 추천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계식 카메라에 흥분되었던 나를 보며, 소실적 자신의 모습을 보듯 실 웃던 이 친구는 주저 없이 FM2를 추천해 주었다. 올림푸스 OM 시리즈에 눈길이 가있던 나에게 친구는 한사코 FM2로 고개를 돌리게 했다. 주된 이유는 니콘 렌즈를 구하기 쉽다는 것이었는데,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사진의 첫 걸음을 풍부하게 해준 데에 고마워하고 있다(친구, 잘 지내고 있는가).
물론 아직까지 OM 라인업 중 단 하나도 사용해 본 적이 없으며, 그외에도 만져본 카메라가 거의 없다. 혹 만약 첫 카메라가 FM2가 아닌 다른 기종이었다면 아마도 그 카메라에 넘치는 애정을 쏟아부었을 게다. 카메라라면 사족을 못쓰던 때였으니까.

2006년 2월이었다. 택배로 배달된 따끈따끈한 박스를 열어 처음 FM2를 잡는데, 손과 가슴에 전달되는 아, 그 금속성의 차가움이란…. 이 녀석 차구나. 그래서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은근! 마음은 따뜻하지만 겉으론 차가운 척 하는 게 닮았다고 생각했….

굳이 사진을 찍을 일이 없어도 언제나 가방 안에 FM2를 넣고 다녔다. 요즘엔 작은 똑딱이를 구해 넣고 다니다보니 일상사에서 찬 밥 신세이긴 하지만, 그래도 어디든 발길을 하게 되면 꼭 챙긴다. FM2를 가방에 넣고 다닐 땐 이 녀석을 손수건 같은 천으로 감싼다. 이를 본 한 친구가 카메라 어지간히 챙기라며 핀잔을 주었는데, 사실은 정반대다. FM2를 가방에 그냥 넣으면 가방 안의 책들이 이 녀석에게 긁히고 찢어지기 때문이다.

철해 놓은 필름북을 보니, FM2로 찍은 필름이 43롤이다, ‘와, 벌써’이면서도 ‘고작 이거’이기도 하다. 얼굴을 차갑게 때리던 눈보라 헤쳐 소백산에 오를 때도, 비오던 곰배령 길에도, 폭풍전야의 석모도도, 어릴 적 추억이 묻어 있는 고향을 찾았을 때도, 천불천탑의 운주사에도, 항일 선열들이 죽어간 서대문형무소에도, 고등학교 친구의 결혼식장에도, 이 녀석은 언제나 함께였다. ‘스윽’ 와인더 소리에 자신만만했고 ‘철커덕’ 셔터 소리에 믿음이 생겼더랬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카메라는 지금 당시의 수중에 있는 카메라이다. 당신과 함께 들로 산으로 돌아다니며 거침없이 일을 해주고 즐거움을 주는 카메라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카메라라는 것을 지금 이 순간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만 ‘사진의 본질’에 집중할 수 있다.
― 김홍희, 『나는 사진이다』에서


니콘의 F2a와 F6(이건 좀 과한가), 콘탁스의 G1과 RX, 최근에 나온 파나소닉 LX3 등등, 여전히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카메라는 많고도 많다. 사진보다 카메라가 좋았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변치않고 확실한 건 나의 첫 번째 카메라는 FM2라는 사실이고, 앞으로 사진을 얼마나 찍을지는 모르겠지만 FM2와 함께 한 시간은 쉽게 잊지 못할 것이라는 거다. 그 어떤 아름답고 훌륭한 카메라를 만나다고 해도 말이다. 마치 첫사랑처럼.

지금도 FM2엔 400TX가 물려 셔터가 끊길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다.

― 2008. 10. 2



■ 아래는 FM2로 찍은 사진 몇 장이다.

TMY | 200603


마지막 와불이 서면 民의 세상이 온다던 천불천탑의 운주사 | REALA | 200607


여의도 | E100VS | 200608


푸르디 푸르던 월악산 | E100VS | 200608


무등산, 장불재에서 바라본 백마능선 | GOLD100 | 200609


후배 녀석들과 오른 순백의 소백산, 겨울 등산길에 빨간 목장갑 센스 | PRO400H | 200612


GOLD100 | 200701


고등학교 친구 결혼식, 일곱살 어린 신부 | 400TX(+1) | 200703


선유도 | GOLD100 | 200705


강화도 외포리 | NEOPAN400 | 200709


160VC | 200710


눈 내리던 서대문 형무소 | DELTA400(+1) | 200801


조카 | DELTA400 | 200802


남강중 앞 | DELTA400 | 200803


CT precisa | 200805


예뻤던 대원사 | RVP50 | 200805


가을을 재촉하던 증심사 | TMY | 200809